뮤지컬 <세인트 소피아>

시대가 호출한 다크 히어로
<세인트 소피아> 작가 양소연, 작곡 이승현

 

뮤지컬 <세인트 소피아>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는 소냐를 주인공으로 가져온 작품이다. 서울예대와 CJ아지트 리딩 공연을 거쳐 이번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6의 쇼케이스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세인트 소피아>의 창작자 양소연 작가, 이승현 작곡가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죄와 벌』의 스핀오프
쇼케이스 선정작이 된 것을 축하한다. 이 작품은 이번 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멘토나 심사위원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았나.
양소연
고전을 모티브로 삼은 록 뮤지컬이라는 점, 무엇보다 기존의 ‘성녀’를 ‘다크 히어로’로 재해석했다는 점에 주목해 주셨다. 원작을 알고 있는 분들의 경우 원작에서는 다소 초월적인 헌신과 희생을 보여줬던 소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입체적인 동기를 부여한 점에 점수를 주셨다. 심사위원과 멘토님들께서는 극의 동시대성, 구성력, 넘버 등에 발전 가능성을 보셨던 것 같다.

 

<세인트 소피아>는 오랜 개발 과정을 거쳤다. 2019년 서울예대에서 먼저 발표했는데 이 작품을 개발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양소연
처음 작품 구상을 한 건 2017년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인데, 등장인물 중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이 로쟈의 곁을 지키는 소냐였다. 엔딩에서 소냐는 로쟈가 지은 죄를 나누어지고 시베리아로 가서 죄수들을 보살핀다. 이게 단순히 신앙심으로만 가능한 일일까. 왜 시베리아의 모든 죄수들이 소냐를 따르는지, 소냐가 죄수들의 구원자가 되기까지 그녀 안에 어떤 드라마가 존재했을지 궁금했다. 


이승현 극의 시대적인 배경인 제정 러시아는 유럽 전체에서 굉장히 뒤처진 나라였다. 종교적으로도 억압되어 황실은 부패했다. 이것을 타파하고 싶은 열망이 세인트라는 존재를 불러왔다. 이것을 음악적으로 표현한다면 록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고전을 록 뮤지컬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신선했다.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상황이나 그것을 록으로 풀었다는 점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와도 비슷하다. 
양소연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시대의 변혁, 변혁 뒤의 이면들, 변화하는 군중들의 심리 같은 것들이 흥미롭다. 뮤지컬 자체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작품이 지닌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말하고 싶은 이야기였고, 그런 주제의 작품을 좋아한다. 

 

작품 개발을 하면서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은 무엇인가?
이승현
음악적인 결은 오프-브로드웨이 록 뮤지컬 <헤더스>을 많이 참고했다. 날 것의 느낌이 강한 음악 스타일이 비슷한 것 같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나 <렌트>처럼 완전히 성스루 뮤지컬은 아니다 보니까 <넥스트 투 노멀>같이 드라마가 강하면서도 록 음악의 색깔을 강한 작품들을 참고했다. 

 

 

서울예대 공연, 2020년 CJ문화재단 공연 그리고 이번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를 거치면서 작품적으로 가장 많이 변한 점은 무엇인가?
양소연
기존 대본에서는 소냐의 마지막 선택이 개인의 구원 내지는 해방으로 귀결되는 인상이 강했다면, 이번에는 그것이 자기 자신보다는 시대를 위한 선택으로 비춰지게 했다. 이 작품이 ‘다크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마치 히어로 무비의 프리퀄처럼 인간 소냐가 ‘세인트 소피아’의 이름을 얻게 되는 과정을 더 집중해서 보여주려고 했다.

 

심사용으로 5곡을 제출했다. 이전 버전에 비해 이번 디벨롭한 음악의 구성이나 특징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승현
록 뮤지컬로서의 정체성을 선회한 것은 아니다. 다만 ‘뮤지컬로서의 록 음악’에 대해 고민했다. <세인트 소피아>는 콘서트 형식의 쇼 뮤지컬이 아닌 드라마가 강조되는 극이다. 록 음악의 에너지를 통해 극의 드라마를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이번 디벨롭의 가장 큰 목표였다. 음악이 담고 있는 정서적 디테일을 보완했다. 이전에는 ‘분노’라는 키워드에 집중하느라 강한 에너지의 곡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같은 가사라도 그 안에서 슬픔, 무기력 등 다양한 결의 정서를 담아내려 했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의 색깔이 더 다채로워지고 드라마틱해진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도 유효한 메시지 제시
쇼케이스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무대화를 거친 작품이다. 이번 쇼케이스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양소연
작품 내적으로는 지금까지의 디벨롭이 극 구성과 주인공 소냐 캐릭터 구축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관객들을 본격적으로 만나기 전 최종 단계라는 생각으로, 이 작품이 결국 무엇을 말하고, 관객들이 이 작품에서 무엇을 기대할지에 초점을 맞춰서 작업 중이다.


이승현 업계 전문가, 프로듀서들은 물론 일반 관객들 앞에서 <세인트 소피아>의 장기 상업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작품을 처음 개발할 때부터 지금껏 품어왔던 소망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졸업 공연은 교내 공연이다 보니 외부 관객이 거의 없었고, CJ아지트 리딩 공연도 코로나로 인해 비공개로 전환되면서 많은 관계자들에게 선보일 수 없어서 아쉬웠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원작이다. 이 작품의 지금의 젊은 관객들에게 어떤 점을 공감시킬 수 있을까? 
양소연
원작 자체가 시대를 타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생각하면 ‘인간이 죄를 징벌할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다. 지금의 사법이나 정치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불만이 많다. 그런 답답한 부분을 짚어주고 해소할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통쾌한 카타르시스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서도 유효한 질문이 될 수 있도록 생각할 거리를 제시했으면 한다.


이승현 극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데 음악은 좀 더 대중적으로 풀어내려고 했다. 스타일리쉬한 대중적인 음악으로 관객들이 더 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작품의 테마 곡을 꼽는다면?
이승현
프롤로그 넘버인 ‘세인트 소피아’다. 시베리아 형무소를 배경으로 고통에 신음하는 죄수들이 감옥의 정신적 지주인 ‘세인트 소피아’를 찬양하는 노래다. 이 현상에 대해 로쟈는 질문을 던지고, 포르피리는 반박하고, 마지막으로 ‘세인트 소피아’의 주인공 소냐가 등장해 확신을 준다. 작품의 방향성과 스타일을 처음 보여주는 강렬한 넘버라고 생각한다. 작곡가로서는 ‘천국은 나만 가’ 넘버가 우리 작품의 스타일을 제일 잘 드러내는 넘버라고 생각한다. 소냐의 첫 솔로 곡인데, 제일 먼저 쓴 곡이기도 하다. 초기 작품을 발상했을 때 생각했던 작품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곡이다. 

 

작품의 스케일이 적지 않다. 중극장이나 대극장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규모이다. 정식 공연이 되어 무대화를 가정할 때 강조하고 싶은 요소가 있는가?
양소연
연출부의 역할이겠지만 미니멀한 무대에서 의상이나 무대도 시대를 고증하기보다는 현대적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이 극이 어떤 그릇에 담기더라도 작가로서 놓치고 싶지 않은 포인트는 인물의 드라마다. 관객들로 하여금 극 중에서 일어나는 사건보다도 그 사건 속 인물들의 심리와 선택에 집중하게끔 노력하고 있다. 앙상블 또한 기능적인 역할뿐 아니라 변화하는 군중으로서의 드라마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주인공 소냐의 드라마가 극을 탄탄하게 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승현 1막 마지막에 ‘빛이 있으라’는 합창곡이 있다. 이 곡은 서울예대 공연 때부터 관객 반응이 가장 좋았던 곡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작품과 딱 맞지 않은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형적이긴 하지만 뮤지컬 합창의 맛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다. 이러한 합창이 중대극장에서 더욱 부각될 것 같다. 

 

뮤지컬 작가, 작곡가로서 이후의 계획이나 희망하는 바가 있다면?
양소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그릇에 담더라도 처음 창작의 동력이 되었던 알맹이는 잃지 않고 가져가고 싶다. 그리고 그 알맹이가 관객들에게도 보였으면 한다. 그것이 세계관이든, 추상적 이미지든 간에 대체 불가능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일단 가사를 잘 쓰고 싶다.

 

이승현 최근에 <하데스타운>, 뮤지컬 영화 <디어 에반 한센>을 봤는데 음악이 주는 힘이 참 컸다. 드라마와 음악의 합이 딱 맞을 때 그 전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뮤지컬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곡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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